학회소식         공지사항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201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94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저, 문학동네, 2015 


 


<출판사 서평>


 


『파리를 생각한다』 이후,
파리의 산책자 정수복이 돌아와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 33경


『파리를 생각한다』에서 파리의 골목들을 산책하며 도시공간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내보였던 정수복이 파리에서의 오랜 ‘정신적 망명’ 생활을 마감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낯설어진 서울에서 ‘이방인’으로서 다시 적응하기 위해, 그는 서울의 도심과 골목들을 걷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겨웠던 서울의 풍경들이 파리에서 온 이방인 ‘정수복’의 눈에는 놀랍고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이라는 화려한 거대도시, 그 도시 속 작고 고단한 서울 사람들. 이 책은 그 명암을 특유의 문학적이면서도 냉철한 문장으로 그려낸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인 서울의 풍경화이다.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이 아닌,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건져올린 ‘정수복의 서울 33경’은, 서울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지만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현대인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내 삶의 장소는 서울-파리-서울-파리-다시 서울로 요약된다. 나는 서울과 파리를 번갈아 오가며 살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인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서울 생활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파리 생활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영원한 ‘떠돌이’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파리에서 서울을 떠올리던 나는 서울에 돌아와서는 파리를 떠올린다. 나는 완전한 서울 사람이 될 수 없고 온전한 파리 사람도 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낯선 곳에 살게 된 이방인은 자기도 모르게 일상의 인류학자가 된다.
이 책은 사라져버릴 것들, 아니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걸으며 부딪친 온갖 자잘하고 사소하고 하찮은 풍경들을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도시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삶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책에 실린 글로 쓴 풍경사진은 모든 것을 망각의 늪으로 쓸어넣어버리는 시간의 힘에 대한 힘겨운 저항이자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들을 기어이 붙잡아두려는 안타까운 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에 실린 풍경사진 같은 글들은 이제 다시 쓰지 못할 글들이다. _본문에서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일상의 모험, 도시 걷기
정수복, 서울을 산책하다


작가이자 사회학자, ‘전문적인’ 산책자로 불리는 정수복은 그간 도시 걷기에 대한 저서들을 집필해왔다. 관광지로서의 파리가 아닌 파리의 뒷골목을 속속들이 걸어다니며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파리를 조명한 『파리를 생각한다』 『파리의 장소들』을 비롯하여, 예술가와 학자들의 휴양지인 프로방스를 조명한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등은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닌, 인문학과 사회학, 문학이 결합한 독특한 글쓰기로 주목받았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던 그가 서울로 돌아왔다.

낯선 땅에서 살게 된 이방인이 자기가 살게 된 도시와 익숙해지는 방법은 그곳을 두 발로 걷는 일이다. (…)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서울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서울이 나에게 걸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래서 파리 걷기에 이어 서울 걷기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정수복이 실행한 서울 걷기의 방법론이자 ‘이방인 산책자’로서 한 도시를 걷는다는 것의 의미와 단상을 써내려간 책이다. 인문학과 문학, 사회과학이 결합하여 기묘하게 오가는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도 여전하다.

1부에서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서울 걷기’를 시작한 이유와 배경, 그의 눈에 들어온 서울의 천태만상들이 펼쳐진다. 파리에서 끊임없이 서울을 생각하던 정수복은 서울에서는 자신이 떠나온 파리를 떠올리며, 두 도시의 차이와 사이를 오간다.
모든 것이 빨리 빨리 돌아가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수도 서울은 ‘관리사회’다. 즐비한 간판들과 광고 문구들 속에서 그는 수없는 ‘관리’의 욕망을 발견한다. 금융 관리, 건강 관리, 조직 관리, 인맥 관리, 가족 관리……
하여 수없는 관리들로 바쁜 서울에선 무엇이든 ‘배달’이 가능하다. 배달 문화의 최선진국에서는 퀵서비스부터 온갖 배달음식까지 오토바이를 탄 배달족들이 도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 위험한 풍경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은 결코 편치만은 않다.
정수복이 현미경으로 응시하듯 관찰하고 수집한 서울 33경이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한국인의 문화적인 관습과 서울의 특성이 파리와의 비교 속에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남자, 남자친구의 겉옷을 들어주는 여자의 모습은 서울이 아닌 파리의 연인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파리 사람들은 연인 사이에서도 자기의 개인 소지품을 온전히 맡길 만큼 서로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면 모든 것을 서로에게 내맡기고 완전한 하나가 되어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듯한 서울의 연인들을 관찰하며, 정수복은 각 도시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다.
그 밖에도 일주일을 입고 걸어도 그리 더러워지지 않았던 파리에서 입었던 셔츠가 금세 새카매지는 먼지 날리는 서울에서의 산책, 칼같이 신호등을 지키는 서울 사람들에 비해 ‘언제나 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박혀 있기에 빨간불일 때도 서슴없이 걷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 던킨도너츠에서의 엄마들의 수다 등을 분석하며, 그는 서울의 민낯을 가감 없이 써내려간다.

당신이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방인이라면,
서울이란 대도시의 경계인이라면


정수복은 ‘당연과 물론의 세계’를 뒤흔들어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사회학자이다. 그것은 그가 한 도시에 정착한 ‘토박이’가 아니라, 수차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두 도시 모두에서 ‘이방인’으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이방인으로서 도시를 걷는다는 것의 의미와 ‘이방인 사회학자’가 한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유용함에 대해 써내려간 글들이다.

이방인은 늘 ‘새로운’ 삶을 추구한다. 공간의 이동은 규범적 기준과 인지적 맥락의 변화를 초래한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의 이동은 많은 경우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를 가져오며 그와 동시에 지켜야 할 규칙과 세상을 보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방인은 도착한 곳의 규칙을 배워 그곳 사람들에게 그들과 동일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지만 떠나온 곳의 규칙을 자기도 모른 채 여전히 몸에 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제 이곳의 사람이면서 여전히 저곳의 사람이다. 그는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존재이다. 그는 원한다면 자신이 처한 곳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현재 있는 장소의 주어진 역할에 매몰되지 않는 이방인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그는 지리적 이동성만이 아니라 정신적 방랑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이게도 어느 한곳에 정착하고 싶은 욕망 또한 가지고 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영원히 떠돌기를 바라는 이방인은 없다. 그는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줄 집단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집단을 결코 찾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방인은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뿌리내리길 원하는 모순적 존재다.
이방인은 ‘위험한’ 존재다. 이방인은 토박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 가정을 공유하지 않으며, 토박이들이 드러내놓고 명백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규칙을 잘 모른다. _본문에서

서울과 파리, 이곳과 저곳을 오가던 이방인 정수복은 당분간은 ‘이곳’ 서울에서 서울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10년 만에 돌아와 오늘의 서울을 낯설게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을 그는 이제 잃어가고 있기에, 그는 이 책을 ‘이제 다시 쓰지 못할 글’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또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의 초상을 그려주길 바란다.
그는 ‘사회학은 사회학자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도 절실하고 아까운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이 책을 통해 도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개별적인 ‘시민 사회학자’가 되어 ‘걷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지금, 당신의 서울은 어떤 모습인가.

 첨부파일
도시를_걷는_사회학자.jpg
목록